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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만원 주고 직장을 다닌 사연

靜岩 吳益洙 2010. 1. 30. 10:49
7000만원 주고 직장을 다닌 사연
[코난, 2010/01/29 13:03, 나는]
저는 10년 전 퇴근길 교통사고로 목 신경손상으로 인해 전신마비 장애인이 된 김영주라고 합니다. 사고 이후 병원에서 1년을 집에서 2년을 누워서만 살아야 했습니다.

그때는 인터넷이 지금처럼 보급되어 있지 않다보니 어디서 장애 관련 정보를 알아야 할지. 가끔씩이라도 밖에 나가고 싶으면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여기저기 알아보았지만 알아볼 곳도 알려주는 곳도 없어 많이 힘들었습니다.

정신은 멀쩡한데 27살이라는 젊은 나이에 전신마비의 장애로 감옥이 아닌 감옥으로 변해버린 방 안에서 TV와 친구가 되어 평생을 살아야 하고, 또 나를 돌봐주시는 부모님이 더 나이가 드셔서 저를 돌봐줄 수가 없다면, 결국은 장애인 시설로 들어가 먹으라면 먹고, 자라면 자고, 그러다 인간으로 태어나 아무런 의미도 없이 살다 갈 생각을 하니 너무나도 끔찍했습니다.

그러나 전신마비의 장애보다 더 힘든 것은 밖에 나가고 싶어도 나갈 수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저는 그 현실에 좌절하여 이 사회에서 소외된채 지독한 외로움에 빠저 서서히 자살이라는 친구(?)가 유혹하기도 했었지만 독약이 있다 하여도 옆에서 누가 주지 않는 한 먹을 수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회사에 취업하기까지 거친 과정들

그러던 중 컴퓨터를 구입하여 인터넷을 접하면서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장애 관련 정보를 알게 되었고, 그때부터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 별의 별짓을 다했었습니다.

우선 서울에 있는 장애 관련 단체를 찾아다니며 상담도 해보고, 초등학교 일일교사, 장애인패션쇼도 참여하고 그러던 중에 장애인 이동권 확보를 위한 연대투쟁으로 연행되어 영등포경찰서 유치장에 갇히는 일도 있었지만 결국은 제가 지속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은 찾지를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2001년 여름 우연히 정립회관(소아마비협회)에서 중증장애인을 위한 자립생활세미나에 참여하면서 중증장애인자립생활의 외국사례를 알게 되었고, 그때 처음으로 당사자주의란 단어를 알게 되어 앞으로 내가 해야 할 일이 이 일이다 싶었습니다.

하지만 지방의 소도시에 살고 있는 저로서는 서울에서의 활동 또한 힘들었고, 무엇보다 지속적인 활동을 위해서는 활동보조인의 필요성이 절실했습니다.

사고 당시 동료 운전자의 졸음운전으로 사고가 났지만 자동차보험을 종합보험이 아닌 책임보험에만 들어 있었고, 퇴근길 교통사고는 산재보험적용이 되지 않아 경제적인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혹시나 ‘후원을 받을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에 여기저기 문의하였지만 그것 또한 쉽지 않아 이렇게는 도저히 안 되겠다는 생각에까지 이르게 되었고, 다시 고심 끝에 스스로 벌어서 활동을 해야겠다고 결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개월 동안 내가 할 수 있는 직업이 무엇일까? 고민하고, 고민한 끝에 보험업을 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했습니다. 사고 전 서울에서 2년여 간의 영업활동도 해보았고 보험이란 대중화된 상품에 무형의 상품이라서 어느 정도 교육을 통한 지식만 갖춘다면 충분히 할 수 있을 것이란 계산이 생겼고, 내가 교통사고로 장애를 입었다보니 누구보다 더 보험의 중요성을 알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력서와 자기소개서를 만들어 무턱대고 보험영업소에 전화해 소장님을 만나 “다른 직원들과 똑같은 환경과 조건에서 일 할 테니 저에게 한번만 일할 기회를 주십시오.” 하고 부탁드렸지만 소장님은 검토 후 연락을 주기로 하였으나 기다려도 연락이 없자 다시 찾아가기를 반복하고, 반복해 드디어 2003년11월에 수원 보험연수원에서 2주의 교육과 자격시험이 있으니 준비하라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저는 정말 뛸(?)듯이 기뻤습니다. 비록 시작도 하지 않은 일이지만 기회를 주었다는 것만으로도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7년동안 활동보조 비용으로 쓴 돈이 7000만원

그 후로 7년, 어느새 이천에서 보험업을 시작한지도 벌써 7년째 접어들었습니다. 아시다시피 전신마비의 장애로 혼자서는 할동 할 수 없어서 저의 옆에는 항상 저의 활동을 도와주시는 활동보조인이 계십니다.

출.퇴근 형식으로 아침 9시에 출근해서 6시에 퇴근하는데 주로 하는 일은 휠체어에 태워주시고, 운전 및 서류정리를 도와주는 일을 합니다. 그리고 그 비용이 한달에 100만원, 1년에 1,200만원이라는 많은 비용이 듭니다. 월급을 타면 대부분을 활동보조인께 드립니다.

제가 이 사회에서 직장을 다니고, 일을 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돈을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듯 이 사회에서 중증의 장애인들이 사회로 나와서 일을 한다는 것은 때론 일을 해도 월급을 받을 수 없거나, 일을 하기 위해서 오히려 돈을 줘야 일을 할 수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2007년 7월부터 활동보조서비스가 도입되어 정부로부터 월 100시간 금액으로 보면 50만원 정도 지원받아 부담이 줄기는 했지만 아직도 부족한 부분은 제 사비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사고 전 저는 산행과 스킨스쿠버를 하며 누구보다 더 건강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사고로 인한 장애는 저를 피해가지 않았습니다. 생각해 보면 참으로 억울하게도 제가 운전한 것도 아니고, 음주도 과속도 아니었습니다.

단지 많은 회사 업무로 밤늦은 퇴근길에 회사동료의 차를 타게 되었고, 회사 동료 또한 피로로 인한 졸음운전으로 급커브를 제대로 보지 못하여서 퇴근한지 채 5분도 되지 않아서 사고가 나고 말았습니다.


지나온 시간들...

로또 당첨 확률 1/800만, 후천적 장애 입을 확률 1/1만


예전 자료를 보니 2005년도 한해 이천에서 일어난 교통사고만 1,600여건에 달하고, 그중에 1,700여명이 병원에 입원치료를 받고, 안타깝게도 20여명 가까이 사망을 한다는 통계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중에 ‘나와 같은 장애를 입은 분이 또 얼마나 있을까?’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습니다. 이렇듯 장애는 선진화된 산업의 발전으로 선척적인 장애는 줄어든 반면, 산업재해와 교통사고로 인한 장애는 지속적으로 늘고 있습니다.

저는 장애인이 된 이후에 많은 반문을 하였습니다. "왜 나에게 이런 일이 생겼을까?", "내가 무슨 잘못을 했다고", "차라리 내가 운전만 했어도 후회하지나 않지"하는 생각을 많이 하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그 생각은 정말 혼자만의 착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께서는 누구나 한번 대박(?)을 꿈꾸며 로또를 구입한 적이 있을 겁니다. 로또를 구입해서 1등에 당첨될 확률은 무려 팔백만분의 일이라고 합니다.

그래도 혹시나 ‘내가 산 복권이 혹시나 당첨되지 않을까?’하는 기대 심리에 구입을 하죠. 하지만 반대로 사고로 인하여서 내가 장애인이 될 확률이 얼마나 되는지는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신지요. 당연히 없으시겠지만, 놀랍게도 그 확률이 만분의 일도 안 된다고 합니다.

또한 사고로 인한 장애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는다는 것이죠. 이렇듯 장애는 언제 어느 때 당할지 모르는 잠재요소이며. 일부 선진국에서는 장애인의 반대가 비장애인이 아닌 언제든지 장애를 가질 수 있는 ‘예비 장애인’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합니다.

장애는 가지는 게 아니라 겪는 것

기존에 언론과 주변에 언뜻 보이는 장애인은 대부분의 이미지는 생활이 어렵고, 지저분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며, 그 이미지는 내가 장애인이 되었을 때 "장애는 부끄러운 것이다"라고 바뀌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다음은 환경입니다. 저는 전신마비 장애로 전동휠체어를 타고 영업을 하지만 휠체어를 이용하는 특성상 일을 하거나, 옷을 사거나, 음식점에서 식사를 할 때도 제일 먼저 계단이 있는지 없는지 휠체어가 들어 갈 수 있는지를 옷보다, 음식보다 더 먼저 봐야 하며, 길을 다닐 때도 경사진 곳과 패인 곳이 많아 휠체어에서 떨어질 뻔한 적도 많았습니다.

이렇듯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부족과 편의시설의 미비로 밖에 나오고 싶어도 나올 수 없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활동하면서 이런 이야기도 종종 들었습니다. "그런 중증의 장애로 활동하는 게 힘들지 않느냐", "힘들게 뭐하려 돌아다니나? 집에서 쉬는 게 더 편하지 않느냐"하는 말입니다. 맞습니다. 정말 힘듭니다.

그러나 사고 후에 꼬박 2년을 침대에 누워서 살아보니 몸은 편했지만 미래의 아무런 꿈도, 희망도 없는 현실은 점점 죽음이 그리울 만치 마음이 병들어 갔습니다.

하지만 지금 몸은 조금 힘들지만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과 그로 인해서 사람과의 교류가 있다는 것에 항상 감사하며 활동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라면 어떤 길을 선택하시겠습니까? 누구나가 장애인이 될 수 있는 환경 속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의 변화는 단지 장애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 모두를 위해서라도 필요하며, 편의시설의 환경 또한 장애인이 이용하기 편한 시설은 누구나가 이용하기 편하다는 사실 또한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장애인 취업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기?

마지막으로 경제논리의 사회에서 직업은 누구에게나 중요합니다. 돈을 벌어야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고, 먹고 싶은 것을 먹으며, 취미생활도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저는 장애가 심하다 보니 할 수 있는 것보다, 할 수 없는 것이 더 많습니다.

하지만 제가 직업을 가지고 열심히 살고 싶은 것은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방과 시설이 아닌, 이 사회에서 여러분과 함께 살고 싶은 욕망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저 뿐만이 아니라 다른 장애인들도 똑같습니다.

경제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직업은 장애가 있든 없든 누구에게나 중요하지만 장애인에 대한 사회적 인식과 환경의 변화가 없는 현실 속에서 중증의 장애인이 직업을 갖기란 낙타가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보다 더 어렵고 힘든 것이 현실입니다.

하지만 장애인들이 사회 여러 분야에서 일을 가지고 활동할 때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어 이 사회가 조금 더 성숙하고 건강한 사회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제가 여러분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말은 한번만이라도 입장을 바꿔 생각해 보시라는 것입니다.

내가 만약 앞을 볼 수 없는 시각장애인이라면, 내가 만약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청각장애인이라면, 내가 만약 손을 쓸 수 없거나 발을 쓸 수 없는 장애로 휠체어를 사용한다면
"나는 이 사회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이렇게 한번 입장을 바꿔서 생각해 본다면, 상대방을 그리고 이 사회에서 장애인으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를 조금은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요?